기사식당-맛집-송림식당

바깥 날씨가 따뜻하다가, 갑자기 추워졌다. 어디로 가볼까? ‘모처럼 만의 외식이니까 고급스럽게 코스요리?’는 가계 안정을 위해 잠시 접어두고…. ‘손님이 바글바글 하다는 유명한 맛집?’ 은 또 불편한 주차와 대기시간을 견딜 자신이 없다. ‘지금 OO가 제철이라니까 먹으러 가볼까?’는 동행인의 취향에 맞지 않는단다…..

잠시 ‘그럼 자네가 골라보지 않을 텐가?!(난 무조건 No다)’라는 말이 명치를 지나쳐 턱 끝까지 올라오는 것을 꾹 참고 다시 생각해보지만, 오늘 결국 남은 것은 가장 만만하고(?) 실패할 위험 부담이 적은 기사 식당이다. 주차가 편하고, 빠르게 음식이 나오고, 저렴하고, 기본 이상의 맛을 보장할 거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는 곳.

(얼마 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삼시세끼의 차줌마 차승원도 신사동 기사식당에서 배운 레시피를 활용해 모두를 만족시킨 제육볶음을 선보이기도 했다.)

기사 식당의 음식을 생각하면, ‘엄마의 손맛’이라고 쓰고 ‘MSG’라고 읽는 마법의 가루 맛이 충분해서, 밥 한 공기 정도는 금세 뚝딱 해치울 수 있는 찌개나 반찬이 먼저 떠오른다. (가끔 조미료 맛이 당기는 날이 있다.) 그리고 또 생각나는 것은 반찬으로 내주는 계란말이, 테이블 구석에 놓여있던 김 통 정도. 반찬의 간이 세서 평소보다 일찍 밥이 떨어지는 일이 잦아서, 공깃밥 추가를 요량으로 “이모님~”하고 외치면 “셀프!”했던 일들.

이런 게 그리워서 기사식당을 찾는다. 그리고 필자의 경험과 기사식당만의 매력과 맛을 버무려 소개하고자 한다. 기사식당 로드를 찾아서, 첫 번째 식당은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송림식당>이다.

기사식당로드 1화 송림식당

사람들로 붐비는 건대입구역에서 몇 분 정도 걸었을까. 낮은 주택가로 구성된 골목이 금세 나타난다. 뒤를 돌아보면 큰 백화점과 아파트들이 쏟아질 것처럼 서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이 골목에는 유명한 기사식당인 송림 식당을 필두로 10개 정도의 기사식당이 ‘기사님 환영’ 팻말을 붙이고 옹기종기 모여있다.

송림 식당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가장 큰 규모인데, 3층으로 이루어진 식당 건물과 34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타워를 보유하고 있다. 처음부터 이렇게 큰 규모로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1981년 작은 가정집을 개조해 다섯 테이블 규모의 작은 식당으로 출발했다. 정성을 다한 음식을 내놓기 시작한 지 언 40년이 넘은 노포다.

기사식당-맛집-송림식당

송림식당의 외관. 4층 규모의 건물과 주차타워. 그리고 지상 주차장이 있다.

기사식당-맛집-송림식당

택시기사님들의 사랑을 받고 이렇게 성장했다.

기사식당-맛집-송림식당

주차타워는 34대를 수용할 수 있다. 지상주차장보다는 입출차에 시간이 소요되는 편이다.

들어서서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2인분?’이라는 질문이 나왔지만, 당황하지 않~고 돼지불백 1인분, 해장국 1인분을 주문했다. 분주한 주방과 점심시간이 훌쩍 넘긴 시간임에도 이곳을 방문한 손님들이 보인다. 주로 1층에는 시간이 곧 돈인 택시 기사님과 2명 이하로 온 손님을 받고, 그 이상의 인원은 2층으로 안내한다.

돼지불백에 불을 올리고 슬슬 구울 준비를 하는데, 다른 테이블을 슬쩍 보니 뭔가 다들 분주하다. 그러고 보니 세팅할 때 준 가위의 용도(?)가 있을 것 같은데, 서빙하시는 이모님은 설명 한마디 없이 바람처럼 사라진 후였다.

‘아서라, 이런 곳에서 설명을 기대하면 안 되는 거다. 이곳은 파인 다이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이 아니라 기사식당이니까!’라고 애써 위로해본다.

방법은 모르고, 돼지고기는 익어가고.. 조급한 마음에 슬슬 ‘처음 먹어보는 티’를 내면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니, 하수의 등장에 몸을 슬쩍 틀어 본인의 철판을 보여주며 말없이 훈수를 두는 고마운 분들이 속속 나타났다.

곁눈질로 배운 송림식당의 먹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돼지고기를 철판에 잘 볶다가 가위로 잘게 잘라준다.
2) 밑반찬은 김치, 무생채, 미역줄기와 상추를 주는 데, 원하는 재료를 넣고 역시 가위로 적당히 잘라 볶는다.
3) 재료가 적당히 익었다면 밥을 넣은 후 테이블 한 편에 있는 고추장 양념 통에서 양념을 한 스푼 넣어 철판에 눌러 부치듯 볶는다.
4) 기호에 따라 바로 먹거나, 불을 줄이고 조금 기다려 살짝 누룽지를 만들어 먹는다.
※ 뒤집개 등은 따로 없고, 숟가락 2개가 무기다.

기사식당-맛집-송림식당

돼지불백 1인분. 배고팠을 당시에는 적어 보였는데 지금 보니 적은 양은 아닌 것 같다.

기사식당-맛집-송림식당

밑반찬을 넣고 세팅한 모습 (미역줄기는 잘 안 넣는 것 같은데 모르고 넣었다)

기사식당-맛집-송림식당

재료를 잘게 자른다. 빨리빨리~

기사식당-맛집-송림식당

밥 투하~!

기사식당-맛집-송림식당

재료를 잘 섞고 고추장 양념을 넣는다.

기사식당-맛집-송림식당

얇게 펼치니 양이 제법 많아 보인다.

기사식당-맛집-송림식당

여러분 ‘아~’ 하세요

기사식당-맛집-송림식당

밥을 상추에 싸서 드셔보세요

고기가 나오자마자 밥을 볶아 먹는 이곳의 독특한 문화는 오픈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무렵의 돼지불백은 돼지불고기 백반의 형태로 제공했었는데, 어느 날 한 손님이 냉면기에 돼지고기와 쌈 채소로 내준 상추를 잘게 잘라 넣고 밥과 고추장을 넣어 비빔밥 스타일로 비벼먹는 모습을 본 손님들이 하나 둘 따라 하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다. 그 이후에 이 식당에서는 테이블에서 직접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도록 고기 불판을 제공했는데, 손님들의 습관은 그대로 이어져 불판이 나오자마자 그곳에 밥과 상추를 잘게 잘라 넣기 시작했다고.

물론 먹는 사람에 따라 그 방식은 제각각인데 고기만 볶아서 밥반찬으로 먹어도 좋고, 기본 반찬을 다 넣거나 원하는 반찬을 넣어 볶아 먹는 방법도 좋다. 고기의 반은 볶고, 반은 철판 가장자리에 남겨두어서 두 가지 맛을 다 보는 고수도 있었다.

이곳의 고추장은 단 맛이 적고 감칠맛이 있는 게 특징인데, 볶아먹는 손님들의 취향을 고려해서 여러 가지 재료와 잘 어울리도록 가미해 쓰고 있다고. 아쉽지만 고추장 양념을 만드는 레시피는 공개하지 않았다.

송림식당의 또 다른 대표 메뉴는 선지를 듬뿍 넣은 해장국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기사님들의 만족도가 특히 높다. 해장국을 촬영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기사님이 다가와 ‘방송국에서 왔어요?’하고 대뜸 묻는다.

“아.. 아니… 어… 그러니까 인터넷(?)요”
“아 그렇구먼(의외로 바로 이해하셨다!) 좋은일 하는구먼”

이 유쾌한 기사님은 송림식당이 개업식을 할 때부터 이곳을 다녔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모습이 제일 좋아. 밥공기가 넘칠 정도로 쌀밥도 꾹꾹 담아주고, 우리는 잘 움직이질 않으니 소화 잘 되라고 한 사발 떠주는 숭늉하고 동치미에서부터 우리를 배려하는 느낌이 들어. 그래서 해장국이 생각나면 무조건 이 집으로 오지”

“한 끼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면 다시 일터로 돌아갈 힘이 생겨”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위해 카운터에 가면 테이블 위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100원짜리 동전탑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동전들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먹을 수 있도록 제공하거나, 잔돈이 많이 필요한 택시 기사님들의 간이 은행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배부르게 식사를 마친 후 후식까지 챙겨주니 선물을 받는 느낌이 들 정도.

[식신 TIP]

▲ 주소: 서울 광진구 자양번영로 79
▲ 영업시간: 평일 10:00 – 22:00, 주말 09:00 – 22:00
▲ 메뉴: 돼지불백 1인분 10,000원, 해장국 8,500원, 김치찌개 8,500원, 된장찌개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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